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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드리밍 오브 어 화이트 크리스마스….’
라디오에서는 벌써 눈도 내리고 루돌프 사슴도 달린다. 무연히 어루만지는 산홋빛 은은한 꽃병에 그분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하얀 피부에 빨간 석류색 립스틱이 곱던 버지니아 여사의 넉넉한 품이 그리운 계절이다.
1980년대 중반, 수년 동안 미국 중부에서 살았다. 그때는 겨울이면 눈이 무릎까지 닿도록 많이 내렸다. 수북수북 흰 눈이 쌓인 주택가 정원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눈사람도 앉아있고 썰매를 끄는 빨간 코의 사슴도
저축은행이자율 달리고 있었다. 초록색 동그란 리스가 걸린 문을 열고 들어서면 버지니아 여사는 함박꽃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아늑한 거실의 크리스마스트리는 노오란 병아리색 전구를 달고 있었다. 식탁에는 미트로프와 크랜베리 소스, 스파게티와 샐러드 등 맛있는 음식들이 조명 아래 화사했다. 과일 조각이 풍성히 박힌 슈톨렌과 커피 등으로 후식까지 즐기고 나면 거실의 폭신한
비과세 적금 소파에 둘러앉았다. 발그레해진 얼굴이 모두 행복해 보였다. 여사는 트리 아래 준비해 두었던 선물을 하나씩 나누어 주고 우리는 뽀스락뽀스락 꾸러미를 풀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여사는 대학의 해외유학생을 위한 봉사단체의 대표였다. 낯설고 외로운 유학생들의 초기 정착을 도와주고 보호자 같은 역할을 했다. 우리가 주렁주렁 이민 가방을 끌고 처음
소득공제 공항에 도착했을 때 자신의 자동차로 아파트에 데려다주었다. 푸근해 보이는 체구에 다홍색 원피스를 입고 다가오더니, “한국에서 온 OOO입니까?” 하며 산타처럼 나타났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신청해 둔 아파트를 찾기가 난감했을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어느 정보든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때는 구전되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가 없으면 발이
법원개인회생제도 없는 것과 같아 꼼짝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 후로도 중고차를 준비할 때까지 가재도구나 식료품 등을 구입하는 일에 동행해 주던 그분의 도움은 우리에게 절실했다.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이나 기념일도 챙겨주는 덕택에 우리는 외롭지 않게 지냈다. 우리와 같은 처지의 학생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며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를
검도 즐기게 했다. 그 덕택에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다. 그런 날에는 세계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들을 모아 슬라이드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외국이라곤 첫발을 디딘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를 꿈꾸게 한 계기가 되었다. 20대 중반인 우리는 세상 물정을 모르고, 그렇게 별생각 없이 받는 데 익숙해졌다.
첫 아이를 가져 입덧에 시달릴 때는 수시로 라자냐나 케이크 등의 음식을 만들어다 주었다. 남편이 며칠씩 집을 비우면 나를 데리고 근처 공원에 나가 점심을 먹고 산책을 시켜 주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할 때도 졸업식장에 찾아와 나란히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여사의 특별한 인품이 도드라져 보일 때가 있었다. 어느 가을, 체리 수확을 체험하러 그분의 아들 집에 함께 방문했다. 목수 일을 한다는 그의 집은 시내에서 벗어난 외곽에 있었다. 아담한 농가주택은 너도밤나무와 체리나무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었다. 오래된 가재도구며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옛날 서부영화 속 외딴 농촌 모습을 보는 듯했다. 도심의 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와 구릿빛 노동자의 첫인상은 사뭇 다른 모자(母子)의 모습이었다. 그 남자는 그 집의 일꾼이고, 아들은 따로 있는 줄 잠시 착각도 했다. 성인이 되면 독립적이라는 그들의 의식이나 문화를 감안해도 좁고 근시안적인 나를 돌아보면 그 봉사 정신에 숙연해지곤 했다.
변명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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