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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라니? 뒤를 차창 이 벗어났다. 자신이라는 있었기에딸과 엄마는 15년간 매일 함께 해변을 산책했다. 다운증후군이지만 제 앞가림 잘하는 스물일곱 살 딸 ‘켈리’와, 켈리를 위해 많은 걸 포기하고 또 많이 싸워온 엄마 ‘아그네스’. 평온했던 모녀의 일상이 “애인이 생겼다”는 딸의 폭탄선언으로 엉망이 된다. 딸은 비장애인 남자친구 ‘닐’(김바다·이휘종)과 아이를 낳아 키우는 평범한 인생을 꿈꾸고, 엄마는 딸이 속고 있는 것 같아 속이 탄다. 세상 가득한 차별과 편견이 세 사람 모두를 할퀴는데, 켈리는 이 평범한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언니 나오는 장면에선 '우와, 영화 같다, 짝짝짝!' 그러면서 감탄해요. 진짜 멋있어요!" 연극 '젤리피쉬' 개막을 앞둔 서울 충정로 모두예술극장 국민주택기금 수탁은행 , 딸 '켈리'역 백지윤(오른쪽) 배우의 말에 엄마 '아그네스'역 정수영 배우는 "지윤이는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배우"라며 웃었다. /박성원 기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권리가 거저 주어지지 않는 삶도 있다. 19일 서울 충정로 모두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젤리피쉬’(키워드·연출 민새롬 봄날 )는 어쩌면 ‘사랑할 용기’에 관한 이야기. 실제 다운증후군을 가진 ‘켈리’ 역 백지윤(33)과 엄마 ‘아그네스’ 역 정수영, ‘젤리피쉬’의 찰떡 호흡 모녀를 극장에서 만났다. 장애·비장애의 구분을 넘어선 호소력으로 지난해 모두예술극장 쇼케이스 공연이 전석 매진을 기록한 데 힘입어 1년여 만에 성사된 정식 초연이다.
◇함께 기다려 숙성시킨 사이버대학 기적
이 연극은 관객 마음속에 그어졌던 이런저런 경계를 허문다. 젤리피쉬(해파리)처럼 투명하게 자신을 드러내 관객의 공감과 눈물을 이끌어내는 백지윤의 무대는 매번 기적 같다.



세상은 둘이 장애와 상관없이 서로 사랑한단 걸 안 믿지만, '켈리'(백지윤·왼쪽 주택청약 소득공제 )와 '닐'(김바다)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대본 외우기부터 난관의 연속이었을 터. 백씨는 “비결은 무한 반복”이라며 웃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 많이 읽었어요. 외우고 공부하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대본 중요한 데 라벨을 엄청 많이 붙였어요. 형광펜으로 소상공인진흥원 대출 다 칠해놓고, 엄청 반복했어요.” 말하는 품에 스스로 대견히 여기는 마음이 또렷하다.
정씨는 “연극은 무대 위 배우들이 서로의 ‘액팅’을 기다리는 일의 연속이지만, ‘젤리피쉬’에선 모두 함께 기꺼이 지윤이를 기다려 줬다”고 했다. “대사를 생각해내고, 상황을 잊지 않고 녹아들어 함께 하도록. 매번 새로운 연습이라 생각하면서요.”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통상 두세 달인 보통의 연습 기간보다 훨씬 긴 넉 달간 백씨와 함께 준비했다. 이 연극은 함께 기다리며 숙성시킨 기적인 셈이다. 정씨는 “실은 (실제 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인물을 연기하는) 이런 공연, 관객도 처음이지만 우리도 처음이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사명감 같은 것도 생기더라”라며 웃었다.
◇무대 위서 뿜어낸 낯선 에너지
알고 보면 백씨는 무대 경험이 꽤 있다. 차별을 이겨내려 발레를 배웠던 이야기가 2010년 TV 다큐로 방영됐고, 2013년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문화 행사에서 발레 ‘지젤’ 솔로를 춤췄다. 드라마 ‘고고송’(2019)에도 출연했었다. 그는 “근데, 이 연극을 하며 내가 가장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엄마가 하라고 하는 건 무조건 안 한다고 했거든요. ‘젤리피쉬’ 하면서 그런 고집 다 없어졌어요. 먹는 거 되게 좋아하는데, 이젠 동생들한테 다 양보해요.”
정씨는 “작년에 이어 다시 연습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연습실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배우로서 백지윤이 성장한 덕이 크다. 정씨는 “연습 때 지윤이가 조금 부족한가 싶었던 장면도 무대에 올라가면 처음 보는 에너지를 뿜어내더라”라며 웃었다. “남자 친구 닐과 춤출 때 지윤이에게 정말 행복해하는 켈리의 얼굴이 나와요. 엄마 없는 틈을 타서 닐과 비밀을 만들 때 대사와 몸짓의 ‘티키타카’도 그대로 켈리예요.” 정씨는 “학교 보낸 아이가 처음 1등 한 기분이었다. 지윤이가 우릴 위해 많은 걸 해주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백씨가 가장 아끼는 대사는 “걱정 안 해도 돼, 나 괜찮아.” 2막에서 엄마가 “너는 아기 가질 수 없어”라고 얘기할 때 켈리의 대답이다. 정씨도 아그네스가 “엄마가 미안해. 내가 잘못 생각했어”라고 고백하는 대사가 가장 좋다. 백지윤 켈리가 줄곧 젤리피쉬처럼 투명했다면, 이 대사에 이르러 엄마 아그네스도 켈리처럼 투명해진다. 예술도 사랑도 장애·비장애를 구분했던 관객의 선입견과 편견이 녹아내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스스로 어떤 배우라 생각하느냐 묻자 백씨는 “노력하는 천재 배우!”라며 깔깔 웃었다. “켈리는 강인하고 고집과 자기 주장이 세요. 날 닮았어요. ‘젤리피쉬’는 켈리처럼 내게도 ‘성장의 기적’이에요!”
☞젤리피쉬
영국 극작가 벤 웨더릴의 희곡. 다운증후군 배우 사라 고디 주연으로 런던 부시극장 초연(2018) 뒤 내셔널시어터에서 공연(2019)해 모두 흥행했다. 오프웨스트엔드어워즈(Offies) 4개 부문, 작가조합상(WGA) 후보 등에 올랐다. 사라 고디는 영국제국훈장(MBE)을 받은 최초의 다운증후군 여성 예술가가 됐다.